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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들키면 안 돼, 자 이제 ‘토크타임’

작성자 최고관리자 등록일 2023-04-15 15:26:59 조회수 995회 댓글수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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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키면 안 된다. 평생. 어떤 일이 있어도.

<자, 이제 댄스타임>(이하 <댄스타임>)은 ‘들키면 안 되는 것’을 말하는 다큐영화다.

영화는 도입부에서 낙태 경험을 이야기하는 여성들을 모자이크 뒤에 놓는다.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주르륵 누워 있는 거예요, 여자들이. 진짜 막 퀴퀴한 피냄새 같은 거랑….” “여기는 어디고 나는 누구지 이런 생각이… 왜 나는 여기 혼자 있어야 하나.” “CSI 같은 거예요. 조명이 환하고 스테인리스가 조명을 받아서 반짝반짝 빛났어요.” “(수술이 끝나고) 편의점에서 인스턴트 미역국을 혼자 먹는데, 따뜻하지도 않고 다 식은 그 밥을 먹는데… 제 기억에서 낙태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그 장면이에요.”


모자이크 벗자 드러난 ‘풍부한 표정’들

낙태는 낙태를 경험한 당사자에게 죄의식을 느끼게 하거나 삭제하고 싶은 사건일 수 있지만, 그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그들의 다른 일상마저 무너지는 건 아니다. 낙태라는 하나의 사건을 통해 그 사람을 재단할 수도 없다. 하지만 모자이크 뒤에 있는 그녀들은 삭제돼야만 하는, 말 못할 경험을 한 사람으로 읽힌다.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나서는 안 되는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기도 하다.
모자이크 뒤에서 약 7~8분간 낙태 경험을 말하는 그녀들로부터 영화는 천천히 모자이크를 벗겨낸다. 해사한 얼굴의 여성들에게서 ‘풍부한 표정’이 드러난다. 누구는 초등학교 교사이고, 누구는 곧 학부모가 된다. 누구는 그냥 사무직 회사원이고, 누구는 인터뷰 당시 뱃속에 생명을 품고 있다.
한국 사회의 여성들에게 낙태는 꽤 보편적 경험이다. 보건복지부의 2010년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가임기 여성(15~44살)이 한 번이라도 낙태 수술을 경험한 비율은 29.6%다. 10명 중 3명꼴이다. 한국의 인공임신중절률도 인구 1천 명당 15.8건(2010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가운데서도 다소 높은 편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 ‘낙태를 했다’고 말하는 여성들의 맨얼굴을 보는 것은 낯선 일이다. 그래서 <댄스타임>이 인터뷰이들의 얼굴에서 모자이크를 벗겨내는 순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소름 돋게 하는, 거창하게 말하면 ‘전율’이 일게 하는 지점이 있다. <댄스타임>을 만든 조세영 감독은 “‘낙태는 있지만, 낙태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는 현실이 제작팀이 영화를 만들게 한 동력이었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낙태를 한 여성은 ‘범죄자’다. 형법 제269조 1항은 낙태한 여성에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부과한다. 형법에 현재의 낙태죄가 규정된 건 1953년이지만, 거의 50년 동안 이 조항은 사문화된 법이었다. 심지어 1960년대 이후 정부는 경제발전을 위해 강력한 출산억제 정책을 실시했고, 인구억제책의 일환으로 ‘낙태버스’가 운영될 만큼 낙태가 ‘피임’의 한 방법으로 인식되던 시절도 있었다(‘배우자 동의의 실제: 남성에 의한 협박 상담 사례’, 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그러나 2010년 낙태반대운동을 벌이던 의사단체 ‘프로라이프의사회’가 낙태 시술을 한 산부인과 3곳을 검찰에 고발한 사건에 이어 2012년 헌법재판소가 낙태 조항에 대해 합헌을 결정하고, 지난해에는 상대 남성의 가정폭력으로 인해 관계가 파탄 난 여성의 낙태 시술에 대해 법원이 유죄(벌금형)를 선고하면서, 사문화됐던 낙태의 범죄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출산을 선택하는 건 내 인생을 버린다는 의미였다”

낙태의 원인은 사회구조적이다. 이인영 홍익대 교수(법학)는 그의 논문 ‘출산정책과 낙태규제법의 이념과 현실’에서 “여성의 재생산과 모성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나 지원이 약하고 공적인 사회관리 체계는 부재하기에 임신, 출산, 양육이 수반하는 부담이 온전히 여성에 떠맡겨진다”고 임신·출산이 여성의 삶에 주는 변화를 설명했다. 양현아 서울대 교수(법학)도 “성평등한 피임 수행이 자리잡지 않았”고 “아이를 낳았을 경우 가족과 남성에게 의존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어머니 조건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낙태가 만연하다고 설명한다(‘낙태죄에서 재생산권으로’, 2005).
<댄스타임>에서 여성들이 말하는 낙태 이유에서도 같은 내용이 들린다. “고시생이었어요. 1차를 합격했고 2차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 큰 기회가 눈앞에 있고 고비를 넘어야 하는데 임신이 됐어요. 그때는 절박한 마음이죠. 출산을 선택하는 것은 그때 고시생인 나에게는 내 인생을 버린다는 의미가 되는 거였죠.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싱글 여성은 말한다. “당시 21살인 제게 임신이라는 말은 절망이나 사회적 매장, 인생이 끝났다, 이런 말이었어요. 결혼하지 않은 지금의 저에게도 여전히 그런 것 같아요.” 몸이 죽을 것같이 아프기도 했다. “큰애를 낳고는 세상에 아이를 낳는다는 고통이 최고의 고통이라는 걸 절감하고, 이 고통은 평생 못 잊겠구나 했어요. 그땐 100일 전까지 그 고통이 너무 생생해서 무서워서 잠을 제대로 못 잤어요. 다시 임신했더니 큰아이 때 아팠던 것만큼 몸이 아프니까, 이 고통을 감당할 수 있을까,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나 낙태를 보는 사회의 시선에는 이런 여성들의 목소리와 경험은 반영돼 있지 않다. 2011년 11월, 6주 태아의 낙태 시술을 한 혐의로 기소된 조산사가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한 헌법재판소 공개변론 장면은 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조산사 쪽 참고인으로 나온 양현아 서울대 교수(법학)는 “이 가운데 미혼인 자신의 딸이 임신했을 때 그 아이를 낳으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이 몇이나 계십니까. 여성에게 자신의 임신을 종결할 수 있는 권리를 주지 않는다면, 작업장이나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차별은 말할 수 없이 심각해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낙태죄 합헌’을 주장하는 법무부 장관 쪽 참고인 신동일 한경대 교수(법학)는 “낙태의 문제를 현실로 녹여내서는 안 된다. 낙태의 문제는 규범 차원의 문제고, 규범 차원의 문제는 하드웨어다. 낙태 현실 문제는 소프트웨어다.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하드웨어를 바꿀 수 없다”고 맞받았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2012년 8월 이 ‘소프트웨어 이론’을 받아들여 “임부의 자기결정권이라는 사익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에 비해 결코 중하다고 볼 수 없다”며 낙태 합헌을 결정한다.

임신을 종결할 수 있는 권리 주지 않는다면

<댄스타임> 제작 과정에서도 낙태를 보는 사회의 왜곡된 시선은 엿보인다. 제작팀은 좀더 많은 인터뷰이를 만나기 위해 ‘당신의 목소리가 필요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정중하고 진지하게 낙태 경험을 들려줄 인터뷰이를 모집하는 웹자보를 만들고 이를 온라인상 회원 수가 많은 여러 카페에 올렸다. 돌아오는 대답은 ‘강퇴’, ‘당신들 뭐하는 사람이냐’는 의심의 눈초리였다. 어떤 경로로든 낙태를 말하는 것 자체가 선정적이고 금기시되는 사회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댄스타임>에 출연한 이들은 왜 카메라 앞에 섰을까. 일터인 초등학교에서 인터뷰 촬영을 한 교사는 영화에서 “이 문제를 내가 내 인생에서 직면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안 그러면 스스로를 속이는 것 같”고, “옛날에 버렸던 나를 다시 버리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는 “그때의 나를 사랑해주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사무직 여성’은 “말을 해보고 싶었어요. 글을 쓴다는 건 개인적으로는 해봤는데, 뭔가 다시 한번 말을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고, 곧 아기 엄마가 되는 영상 만드는 일을 하는 여성은 “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대학 생활을 좀먹었던 기억이 정리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자, 이제 댄스타임〉 에서 실제 낙태 경험을 한 여성들이 영화 촬영을 위해 앉은 의자다.

〈자, 이제 댄스타임〉 에서 실제 낙태 경험을 한 여성들이 영화 촬영을 위해 앉은 의자다.

<댄스타임>에서 주목할 점은, 제작진의 신중함과 배려다. 영화는 조세영 감독을 포함해 손경화·강유가람·박소현 등 4명의 30대 ‘가임기 여성’이 공동제작했다. 이들은 인터뷰이의 공개에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인터뷰 뒤에도 편집, 가편집본 상영, 영화제 상영, 극장 개봉 등 작품이 진척되는 모든 단계에 이미 얼굴과 목소리를 모두 공개하겠다고 결심한 인터뷰이들에게 심경의 변화는 없는지, 마음에 걸리는 말은 없는지, 영화에 담지 않길 바라는 말은 없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조세영 감독은 “영화가 불특정 다수에게 상영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이 영화가 출연자의 삶에 개입되기 시작한다는 점에 대해 출연자들이 인지하고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지 고민할 시간과 정보를 주는 건 제작자의 의무다”라고 말했다.
제작진의 인터뷰이에 대한 책임감은 그들이 누리집(letsdance.kr)에 꼼꼼히 남겨둔 제작일지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인터뷰이들이 앉아서 이야기했던 의자 사진들을 올려놓은 글에서 손경화 촬영감독은 말했다. “이 의자 앞에 앉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선택이었을까? 아니 인터뷰를 할 당시에는 비교적 쉬운 선택이었을지라도, 이 선택이 쉬워지기까지는 혼자 감당해야 했던 긴 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시간들을 다 껴안고서 그녀들은 이 의자들에 앉았다. 카메라 앞에 섰다. ‘여기 앉으세요.’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면서 수없이 이 말을 했지만, 이번 작업을 하면서 하는 이 말은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무게감이 다르다.”

보이지 않던 그녀들을 수면 위로 보이게


<댄스타임>은 이제 목표한 마지막 단계를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 2011년 3월 기획된 영화는 그해 5월부터 낙태 당사자 50여 명을 인터뷰하고, 제작비가 없어 빚을 지고 빚을 갚기 위해 공동제작자 4명이 각자 아르바이트를 하고, 각종 영화인 지원 프로젝트에 응모해 지원받은 돈으로 다시 영화를 찍는 등 지난한 과정을 거쳐 2년6개월 만에 완성됐다. 이어 영화제 상영, 공동체 상영을 한 지 8개월 만인 지난 6월26일, 극장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상영하게 됐다. 배급에 필요한 총알 없이, 맨몸으로 부딪혀 서울에선 인디스페이스, 인디스토리, 경기에선 멀티플렉스 두 곳 등에서 상영된다. 조세영 감독은 “말할 수 없는 것, 보이지 않던 것인 ‘낙태’를 주제로 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댄스타임>은 제작 완료가 완성이 아니라, 배급 단계가 매우 중요합니다. 보이지 않던 그녀들을 수면 위로 보이게 해야 하니까요. 따라서 일반 관객이 올 수 있는 공간인 극장 상영이 이 영화의 본질에 접근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용감한 ‘그녀들’이 말하는 낙태에 귀기울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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